

야반도주
지난 호에서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쩌면 면을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는 그 면 뒤에 있는 손에 관한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뭐든 빨리, 싸게, 대충 만들어 내놓기 바쁩니다. 그런 시대에 사십 년 한 가지만 고집해온 손이 있다면 — 그 손이 어떤 하루하루를 지나왔는지, 한 번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요즘 제이가 그 손에게서 홍어무침을 배웁니다. 사업하던 사람이 새벽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장인 옆에 서 있는 게, 저는 처음엔 좀 우스웠습니다. 삼십 년간 사무실에서 숫자와 도면을 다루던 손이, 이제 비린 홍어를 만지고 고춧가루에 물들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지켜보다 보니 웃음기가 가시더군요. 그 홍어무침을 한 점 얻어먹고 나서요. 오늘은 그 부엌에서 제가 지켜본 며칠, 그리고 오간 짧은 대화 하나를 전합니다. 숫자를 다루던 손이, 홍어를 만지기까지 제이가 처음 배운 건 양념장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저널


나는, 당신이 면을 사랑하는 걸 알았어요
먼저 두 장면을 그려보겠습니다. 첫 번째 장면. 며칠 전, 당신은 함흥회냉면을 시켰습니다. 뚜껑을 열고 한 젓가락. 솔직히 첫 느낌은 "음…?"이었을지도 몰라요. 매콤하고, 새콤하고, 낯설게 쫄깃한. 그런데 며칠 뒤였어요. 장을 보다가, 야근을 하다가 — 문득 그 쫄깃함이, 그 칼칼함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상하게, 또 먹고 싶어진 거죠. 두 번째 장면. 무더운 여름날, 당신은 물냉면 그릇을 두 손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우려낸 진한 육수를 목 넘김이 느껴지도록 쭉 들이켰죠.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속을 든든하게, 그러면서도 시원하게 채워주는 그 깊은 맛. 물처럼 밍밍한 게 아니라 사골을 오래 고아 진하게 잡은 육수라,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속이 뻥 뚫리면서도 묵직하게 든든해지는 그 느낌. 밥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카타르시스. 두 장면 중 하나라도 "어, 맞아. 나 그랬는데" 하셨나요


맛을 담다 — 처음이신 당신께 드리는 약속
맛을 담다 — 처음이신 당신께 드리는 약속 안녕하세요. 길주옥을 만든 제이입니다. 오늘은 에릭에게 마이크를 넘기지 않고, 제가 직접 쓰겠습니다. 인터뷰로 전할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여러분께 직접 드리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열 번의 저널 동안 저희는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를 읽고도, 여러분 마음 한구석엔 이런 망설임이 남아 있을 걸 압니다. "이야기는 좋은데… 그래서 처음 시키기가 좀 그래." 솔직한 마음이시죠. 저라도 그럴 겁니다. 오늘은 긴 설득 대신, 짧은 약속 몇 개만 드리겠습니다. 싸게 팔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분명히 하고 싶어요. 저희는 냉면을 싸게 팔지 않습니다. 싸게 팔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회를 줄이거나, 싼 재료를 쓰거나. 그건 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새벽 장인과 제가 시장에서 직접 보고 고른 회와 고기, 넉넉히 올리는 양, 사십 년 양념장 — 여기서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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