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 냉면의 잃어버린 계절
질문 하나로 시작하겠습니다. 냉면은 여름 음식일까요, 겨울 음식일까요? 십중팔구 "당연히 여름이지"라고 답하셨을 겁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에 살얼음 동동 뜬 냉면 한 그릇, 그게 여름의 국룰이니까요. 그런데 죄송합니다. 틀렸습니다. 냉면은 원래, 이가 시리도록 추운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이번 호는 지난 호의 가벼운 사전을 잠시 접고, 냉면이 걸어온 길을 진지하게 따라가 봅니다. 취재를 위해 저는 며칠간 옛 문헌을 뒤졌는데요, 뒤지면 뒤질수록 "내가 알던 냉면이 이게 아니었나" 싶어지더군요. 함께 놀라주셨으면 합니다. 미리 한 가지 일러둘 게 있어요. 오늘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메밀과 동치미의 냉면 — 그러니까 평양냉면 계열의 뿌리입니다. 길주옥이 내는 함흥회냉면과는 애초에 갈래가 다른 이야기예요. 그런데도 굳이 이 역사를 짚는 건, '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두 갈래가 공유하는 오래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함흥의 이야기가 어디


냉면 좀 아는 척하는 법 — 에릭의 냉면 사전과 냉면 MBTI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지난 여덟 번의 저널을 쓰는 동안, 저는 냉면에 대해 아는 척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대기가 어떻고, 함흥과 평양이 어떻고, 사십 년 손맛이 어떻고. 그런데 사실 저도 처음엔 냉면집에서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냥 매운 거 주세요"라고 말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진지한 인터뷰를 잠시 접겠습니다. 저처럼 냉면 앞에서 조금 작아지는 분들을 위해, 오늘부터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전 사전과 — 요즘 유행이라니 저도 한번 만들어본 — 냉면 MBTI까지 준비했습니다. 가볍게 즐겨주세요. 학술적 근거는 전혀 없고, 웃자고 만든 코너가 대부분입니다. (효과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제1장. 이 단어만 알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① 다대기 고춧가루와 마늘, 갖은양념을 다져 재운 매운 양념. 냉면의 화력을 담당하는 핵심 병기입니다. 넣을수록 맵고 똑 쏘아져요. 처음부터 다 넣지 말고, 몇 젓가락 먹어본 뒤 취향껏 더하는 게 고수의


그릇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세요 — 길주옥 상차림 편
며칠 전, 페니수스라는 이름의 손님이 리뷰 하나를 남겨주셨습니다. 정성스러운 별 다섯 개와 함께, 이런 애정이 적혀 있었어요. "꾸리살 사시미 정말 없는데 너무 사랑합니다. 자주 만나요 사장님, 맛을 아시는 사장님이십니다." 저희 대표 — 여러분이 아시는 제이입니다 — 이 그 리뷰에 오래 답글을 달았습니다. "맛 아는 사장님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라고요. 그 한 줄을 곱씹다가,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냉면 한 그릇 곁에 놓이는 것들, 길주옥의 상차림에 대하여. 에릭: 사실 저도 궁금했습니다. 냉면 전문점이라면서, 왜 곁들임 메뉴에 이렇게 공을 들이시나요? 제이: 냉면은 혼자 완성되는 음식이 아니거든요. 오장동 시절부터 그랬어요. 매콤한 회냉면 한 젓가락 먹고, 슴슴한 수육 한 점으로 입을 고르고, 다시 냉면으로 돌아오고. 그 리듬이 한 상이에요. 저희가 곁들임에 공을 들이는 건, 냉면을 더 맛있게 먹는


"판다에서 팔린다"로 — 제이의 생각
지난 호에 약속드린 대로, 제이가 반성문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옮기면 이렇습니다. "본인은 취재 중 온육수에 다대기를 풀어 몰래 시식한 사실을 인정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품질 검수 차원이었음을 밝힙니다." 검수에 밥까지 말 필요가 있었느냐는 저의 추궁에는 묵비권을 행사하셨습니다. 반성문은 일단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제이이기 때문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질문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은 길주옥 앞을 지나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없으실 겁니다. 길주옥에는 지나갈 간판이 없고, 줄 설 문이 없고, 앉을 자리가 없으니까요. 요즘 세상에 가게를 열면서 가게를 열지 않는다니 — 저는 이게 줄곧 이상했습니다. 사십 년 손맛이면 목 좋은 자리에 간판부터 거는 게 순서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습니다. 이 구조를 설계한 사람에게요. 에릭: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왜 매장부터 열지 않으셨습니까? 보통은 매장을 열고


냉면을 완성하는 것은 당신의 손이다 — 회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
냉면을 완성하는 것은 당신의 손이다 — 회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 문 앞에 도착한 한 그릇은, 아직 완성이 아닙니다. 새벽의 부엌에서 사십 년의 손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면을 뽑고, 양념을 재우고, 육수를 내려 문 앞까지 보내는 것. 마지막 손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손에도, 사십 년 동안 부엌이 지켜본 순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적습니다. 지난 호에서 약속드린 대로, 장인이 사십 년간 지켜본 '잘 먹는 손님들'의 비결 — 회냉면 편입니다. 저는 이 취재를 위해 실제로 집에서 길주옥을 주문해, 장인께 배운 그대로 따라 해봤습니다. 부엌의 일은 따라 할 수 없었지만(3호의 굴욕을 기억하실 겁니다), 먹는 일은 다행히 누구나 제대로 할 수 있더군요. 첫째, 비비기 전에 네 가지를 먼저 더합니다. 설탕, 식초, 겨자, 그리고 참기름. 장인: 회냉면은 매콤하고 새콤하고 달큰하고 고소한 맛이 한 그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은 무엇이 다른가 — 두 고향의 이야기
여러분도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냉면집 앞에서 일행 중 누군가 묻습니다. "물냉? 비냉?" 그리고 꼭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죠. "그런데 함흥냉면하고 평양냉면은 정확히 뭐가 다른 거야?" 순간 테이블이 조용해집니다. 다들 먹어는 봤는데, 설명은 못 하는 겁니다. 매운 게 함흥이고 심심한 게 평양이라던데 — 그게 전부일까요? 지난 호 말미에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장인은 "앉아서 할 이야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로 앉았습니다. 점심 장사가 끝난 오후의 부엌, 장인이 내어주신 온육수 한 잔을 사이에 두고요. 에릭: 자, 앉았습니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 뭐가 다른 겁니까? 장인: 사람들은 맛부터 말하는데, 나는 땅부터 말해요. 평양은 평안도고, 함흥은 함경도예요. 평안도는 평야가 넓어서 메밀이 잘 됐고, 함경도는 산이 많고 추워서 감자를 심었어요. 그 땅에서 나는 걸로 국수를 만들었으니, 면이 다를 수밖에. 에릭: 재료가 다르면 면


레시피는 알아도 그 맛은 모른다 — 에릭, 새벽 부엌에 들어가다. "Knowing the Recipe Isn't Knowing the Taste — Eric Enters the Dawn Kitchen."
여러분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어느 식당에서 잊지 못할 한 그릇을 먹고 돌아와, 레시피를 검색해서 그대로 따라 해보는 일이요. 재료도 같고, 순서도 같고, 심지어 계량까지 맞췄는데 — 이상하게 그 맛이 안 납니다. 그릇을 앞에 두고 우리는 중얼거리죠. 뭐가 다른 거지? 고백하자면 저도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난 호에서 제이는 길주옥의 양념장을 "값을 부를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십 년의 시장 테스트를 통과한 배합이라고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배합이라는 건 결국 비율인데, 그 비율을 안다면 누구든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의문을 풀러, 약속대로 새벽 부엌에 불려갔습니다. 지난 호 추신에서 조른 보람이 있었지요. 새벽의 부엌 일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육수를 내리는 일과, 양념장을 개는 일.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 다 적을 수 없지만 — 부엌의 문법은 부엌의 것으로 남겨두는 게 예의겠


값을 부를 수 없는 양념장 — 장인의 사십 년, 제이의 천직 "The Seasoning That Has No Price — Forty Years of the Master, and Jay's Calling"
어제는 오랜만에 하늘이 참 파랬습니다. 그리도 좋은 날, 저는 해도 뜨기 전에 집을 나섰습니다. 길주옥의 부엌이 새벽에 불을 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기 전에, 고백할 게 하나 있어요. 요즘 우리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음식을 참 많이 먹습니다. 문 앞에 도착한 한 그릇을 열면서도, 이걸 만든 손이 어떤 손인지는 모르죠. 그래서 이번 취재는 여러분을 대신한 확인이기도 합니다. 길주옥의 한 그릇은, 믿어도 되는 손에서 오는가. 제이의 안내로 들어선 새벽 부엌. 커다란 솥에서는 육수가 조용히 끓고 있었고, 그 곁에서 한 사람이 말없이 양념을 개고 있었습니다. 고춧가루의 붉은빛 사이로 손이 느리게,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오장동에서 사십 년, 한 길만 걸어온 장인. 인사를 드렸더니 고개만 한 번 끄덕이시고는, 다시 양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말수가 적은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


지명이 아니라 부엌입니다 — 길주옥(吉廚屋), 이름에 담은 마음 "Not a Place, but a Kitchen — The Heart Behind the Name Giljuok"
이름에 담은 마음 — 길주옥(吉廚屋)은 왜 '부엌 주(廚)'를 쓰는가 첫사랑, 첫눈, 첫인사, 그리고 첫 그릇. '첫'이라는 글자가 붙은 것들은 어쩐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데가 있습니다. 이 글이 저에게 그렇습니다. 길주옥 저널의 첫 번째 기록. 그래서 지금, 자판 위의 손끝이 조금 두근거립니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할게요. 안녕하세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 길주옥(吉廚屋)의 이야기를 묻고 기록하게 될 푸드 저널리스트, 에릭입니다. 저는 맛있는 것 앞에서 이야기가 먼저 궁금해지는 사람이에요. 이 한 그릇은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길주옥을 처음 알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함흥회냉면을 내는 집인데, 이름은 함흥도 냉면도 아닌 '길주옥'. 그릇보다 이름이 먼저 궁금해졌죠. 길주옥은 아직 베일에 싸인 집입니다. 오장동에서 사십 년, 한 길만 걸어온 장인의 손맛이 이 부엌에 있다는 것. 지금은 그 한 그릇을 문 앞으로 보내드리고 있다는 것.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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