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문을 엽니다
에릭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소식을 안고 왔습니다. 지난 열다섯 번의 저널 동안, 저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름에 담긴 뜻부터, 사십 년 장인의 손, 값을 부를 수 없는 양념장, 냉면의 잃어버린 계절, 그리고 혼자 먹는 저녁까지.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문장이 하나 있었어요. "언젠가, 문을 여는 집이 되겠습니다." 2호에서 제이가 처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솔직히 저는 그게 먼 훗날의 꿈인 줄 알았습니다. 배달로 시작해, 언젠가 매장을 열고, 언젠가 양념장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삼 단계의 그림.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오늘, 그 언젠가의 날짜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는 10월 16일, 길주옥이 문을 엽니다. 약속은, 이렇게 지켜집니다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매장은, 저희가 잘나서 여는 게 아닙니다. 지난 저널에서 저는 "정착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했었죠. "냉면은 여기로 정착합니다"라


혼자 먹는 냉면, 당신을 위한 저녁
에릭입니다. 오늘은 냉면 이야기를 잠시 접고, 냉면을 드시는 '당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정확히는, 혼자 그 뚜껑을 여는 저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지난 호에서 저는, 당신이 어쩌면 면을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죠. 그렇다면 오늘은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사랑을, 남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도 베풀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 저희 냉면을 받는 분들 중 많은 분이, 지금 이 순간 혼자 그 상을 마주하고 계실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 조용한 저녁에 대해, 오늘은 한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혼자 집에 들어온 저녁 늦은 밤, 혼자 집에 들어온 저녁을 떠올려 보세요.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엽니다. 딱히 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길었고, 대충 때우고 자도 뭐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편의점 도시락, 라면, 아니면 그냥 굶고 자기. 혼자 먹는 저녁이란 대개 그렇게,


정착하는 사람들
지난 호에서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쩌면 면을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미 그걸 알아버린 사람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함흥냉면 앞에서 "어, 나 이 집이다" 하고 마음을 정해버린 사람들이요. 저는 며칠간 길주옥에 실제로 남겨진 손님들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브랜드가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이 냉면이 누군가의 일상에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지, 그 조용한 과정이 저는 참 궁금했거든요. 몇 장면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물론 손님들의 이름은 다 가렸습니다.) "냉면은 여기로 정착합니다" 한 손님이 이렇게 남겼습니다. "진짜진짜 존맛이에요. 면도 얇고 제 취향. 냉면은 여기로 정착합니다." 저는 이 '정착'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음식집을 '내 집'으로 정하는 건 꽤 큰일이잖아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앞으로 냉면이 당기면 여기 시킨다"고 마음을 정하는 것


야반도주
지난 호에서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쩌면 면을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는 그 면 뒤에 있는 손에 관한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뭐든 빨리, 싸게, 대충 만들어 내놓기 바쁩니다. 그런 시대에 사십 년 한 가지만 고집해온 손이 있다면 — 그 손이 어떤 하루하루를 지나왔는지, 한 번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요즘 제이가 그 손에게서 홍어무침을 배웁니다. 사업하던 사람이 새벽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장인 옆에 서 있는 게, 저는 처음엔 좀 우스웠습니다. 삼십 년간 사무실에서 숫자와 도면을 다루던 손이, 이제 비린 홍어를 만지고 고춧가루에 물들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지켜보다 보니 웃음기가 가시더군요. 그 홍어무침을 한 점 얻어먹고 나서요. 오늘은 그 부엌에서 제가 지켜본 며칠, 그리고 오간 짧은 대화 하나를 전합니다. 숫자를 다루던 손이, 홍어를 만지기까지 제이가 처음 배운 건 양념장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저널


나는, 당신이 면을 사랑하는 걸 알았어요
먼저 두 장면을 그려보겠습니다. 첫 번째 장면. 며칠 전, 당신은 함흥회냉면을 시켰습니다. 뚜껑을 열고 한 젓가락. 솔직히 첫 느낌은 "음…?"이었을지도 몰라요. 매콤하고, 새콤하고, 낯설게 쫄깃한. 그런데 며칠 뒤였어요. 장을 보다가, 야근을 하다가 — 문득 그 쫄깃함이, 그 칼칼함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상하게, 또 먹고 싶어진 거죠. 두 번째 장면. 무더운 여름날, 당신은 물냉면 그릇을 두 손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우려낸 진한 육수를 목 넘김이 느껴지도록 쭉 들이켰죠.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속을 든든하게, 그러면서도 시원하게 채워주는 그 깊은 맛. 물처럼 밍밍한 게 아니라 사골을 오래 고아 진하게 잡은 육수라,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속이 뻥 뚫리면서도 묵직하게 든든해지는 그 느낌. 밥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카타르시스. 두 장면 중 하나라도 "어, 맞아. 나 그랬는데" 하셨나요


원래는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 냉면의 잃어버린 계절
질문 하나로 시작하겠습니다. 냉면은 여름 음식일까요, 겨울 음식일까요? 십중팔구 "당연히 여름이지"라고 답하셨을 겁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에 살얼음 동동 뜬 냉면 한 그릇, 그게 여름의 국룰이니까요. 그런데 죄송합니다. 틀렸습니다. 냉면은 원래, 이가 시리도록 추운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이번 호는 지난 호의 가벼운 사전을 잠시 접고, 냉면이 걸어온 길을 진지하게 따라가 봅니다. 취재를 위해 저는 며칠간 옛 문헌을 뒤졌는데요, 뒤지면 뒤질수록 "내가 알던 냉면이 이게 아니었나" 싶어지더군요. 함께 놀라주셨으면 합니다. 미리 한 가지 일러둘 게 있어요. 오늘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메밀과 동치미의 냉면 — 그러니까 평양냉면 계열의 뿌리입니다. 길주옥이 내는 함흥회냉면과는 애초에 갈래가 다른 이야기예요. 그런데도 굳이 이 역사를 짚는 건, '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두 갈래가 공유하는 오래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함흥의 이야기가 어디


냉면 좀 아는 척하는 법 — 에릭의 냉면 사전과 냉면 MBTI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지난 여덟 번의 저널을 쓰는 동안, 저는 냉면에 대해 아는 척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대기가 어떻고, 함흥과 평양이 어떻고, 사십 년 손맛이 어떻고. 그런데 사실 저도 처음엔 냉면집에서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냥 매운 거 주세요"라고 말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진지한 인터뷰를 잠시 접겠습니다. 저처럼 냉면 앞에서 조금 작아지는 분들을 위해, 오늘부터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전 사전과 — 요즘 유행이라니 저도 한번 만들어본 — 냉면 MBTI까지 준비했습니다. 가볍게 즐겨주세요. 학술적 근거는 전혀 없고, 웃자고 만든 코너가 대부분입니다. (효과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제1장. 이 단어만 알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① 다대기 고춧가루와 마늘, 갖은양념을 다져 재운 매운 양념. 냉면의 화력을 담당하는 핵심 병기입니다. 넣을수록 맵고 똑 쏘아져요. 처음부터 다 넣지 말고, 몇 젓가락 먹어본 뒤 취향껏 더하는 게 고수의


그릇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세요 — 길주옥 상차림 편
며칠 전, 페니수스라는 이름의 손님이 리뷰 하나를 남겨주셨습니다. 정성스러운 별 다섯 개와 함께, 이런 애정이 적혀 있었어요. "꾸리살 사시미 정말 없는데 너무 사랑합니다. 자주 만나요 사장님, 맛을 아시는 사장님이십니다." 저희 대표 — 여러분이 아시는 제이입니다 — 이 그 리뷰에 오래 답글을 달았습니다. "맛 아는 사장님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라고요. 그 한 줄을 곱씹다가,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냉면 한 그릇 곁에 놓이는 것들, 길주옥의 상차림에 대하여. 에릭: 사실 저도 궁금했습니다. 냉면 전문점이라면서, 왜 곁들임 메뉴에 이렇게 공을 들이시나요? 제이: 냉면은 혼자 완성되는 음식이 아니거든요. 오장동 시절부터 그랬어요. 매콤한 회냉면 한 젓가락 먹고, 슴슴한 수육 한 점으로 입을 고르고, 다시 냉면으로 돌아오고. 그 리듬이 한 상이에요. 저희가 곁들임에 공을 들이는 건, 냉면을 더 맛있게 먹는


"판다에서 팔린다"로 — 제이의 생각
지난 호에 약속드린 대로, 제이가 반성문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옮기면 이렇습니다. "본인은 취재 중 온육수에 다대기를 풀어 몰래 시식한 사실을 인정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품질 검수 차원이었음을 밝힙니다." 검수에 밥까지 말 필요가 있었느냐는 저의 추궁에는 묵비권을 행사하셨습니다. 반성문은 일단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제이이기 때문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질문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은 길주옥 앞을 지나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없으실 겁니다. 길주옥에는 지나갈 간판이 없고, 줄 설 문이 없고, 앉을 자리가 없으니까요. 요즘 세상에 가게를 열면서 가게를 열지 않는다니 — 저는 이게 줄곧 이상했습니다. 사십 년 손맛이면 목 좋은 자리에 간판부터 거는 게 순서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습니다. 이 구조를 설계한 사람에게요. 에릭: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왜 매장부터 열지 않으셨습니까? 보통은 매장을 열고


냉면을 완성하는 것은 당신의 손이다 — 회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
냉면을 완성하는 것은 당신의 손이다 — 회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 문 앞에 도착한 한 그릇은, 아직 완성이 아닙니다. 새벽의 부엌에서 사십 년의 손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면을 뽑고, 양념을 재우고, 육수를 내려 문 앞까지 보내는 것. 마지막 손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손에도, 사십 년 동안 부엌이 지켜본 순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적습니다. 지난 호에서 약속드린 대로, 장인이 사십 년간 지켜본 '잘 먹는 손님들'의 비결 — 회냉면 편입니다. 저는 이 취재를 위해 실제로 집에서 길주옥을 주문해, 장인께 배운 그대로 따라 해봤습니다. 부엌의 일은 따라 할 수 없었지만(3호의 굴욕을 기억하실 겁니다), 먹는 일은 다행히 누구나 제대로 할 수 있더군요. 첫째, 비비기 전에 네 가지를 먼저 더합니다. 설탕, 식초, 겨자, 그리고 참기름. 장인: 회냉면은 매콤하고 새콤하고 달큰하고 고소한 맛이 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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